< 미완의 꿈과 희망으로의 귀환-박시우의 『국수 삶는 저녁』(2015) >









미완의 꿈과 희망으로의 귀환-박시우의 『국수 삶는 저녁』(2015)을 중심으로



박정희(朴貞熙)


 

목 차

 

 


       Ⅰ. 머리말-꿈을 꾸는 우리들에게

       Ⅱ. 리얼리즘의 이론적 함의

       Ⅲ. 爭, 오월의 그날, 광대뼈에 드리운 그늘

       Ⅳ. 退, 사라진 골목길, 알함브라 궁전의 루삥지붕

       Ⅴ.  悔, 폐광, 싸락눈 소리만 들려온다

       Ⅵ. 起, 가리봉 오거리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

       Ⅶ. 맺음말-다시 시를 쓰는 리얼리스트에게


 

Ⅰ.  머리말-꿈을 꾸는 우리들에게


지난 시기 어느 한 부분에서, 역사의 진보를 믿었던 휴머니스트들은 문학을 하고 시를 쓰며 고민했다. 문학과 시가 암울한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9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관통했던 억울과 암울의 역사에서 문학과 시는 호롱불 밝힌 골방을 전전했지만 당당함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 문학을 한다는 건, 특히 시를 쓴다는 건 현실과 역사 앞에서 고뇌하고 사색하는 것이었다.

그 성찰의 기항지는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어디쯤이었다. 현실과 현상의 진실한 반영을 통해 내면의 참된 울림과 인간 본성을 탐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욕은, 특히 8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부과된 과제였다. 시간이 한참 동안 흐른 지금, 현상은 가려졌으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긴 교착상태에 빠졌다.

문학과 시가 당대의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변용을 통해 몸을 바꿨지만 본질은 존재하는 것. 2000년대 들어 시쓰기와 시읽기의 부박함도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1세기에 걸친 인간해방과 인류해방에의 의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구나 한반도의 모순은 아직도 뚜렷하게 현재진행형이다.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중첩된 사상의 점이지대에서, 문학인과 시인은 좌표를 잃고 서성이거나 새로운 모색을 하며 힘겹게 길을 걷고 있다.

이 혼돈의 시기에 박시우를 읽는다. 박시우의 정체성은 리얼리스트다. ‘리얼리스트100’ 회원이며 『리얼리스트』 창간호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2009년 『리얼리스트』에 등장한 것은 고무적이다. 박시우가 시를 읽고 쓰며 고민했던 80년대를 외출한 지 무려 30여 년을 훌쩍 넘기고, 한 권의 시집으로 우리 앞에 귀환했다. 그의 늦은 귀환은 자기 검열에 이은 확신의 부재였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자신의 시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였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과작이며 태작이었고 문학과 현실에 대한 책임 방기였다.

이제 박시우의 유년과 청년과 중년을 가로질러 그의 리얼리즘 시세계를 편력해 본다. 30여 년의 세월이 어떤 무늬를 띠며 시대와 조응해 왔는지 살피려 한다. 미완의 꿈을 찾아 귀환한 박시우의 시를 읽기 전에, 먼저 그의 정체성인 리얼리즘의 이론적 함의를 규정하겠다. 그리고 爭·退·悔·起로 명명하여 따라가 본다. “爭-오월의 그날-광대뼈에 드리운 그늘”에서는 모순된 현실과 투쟁한다. “退-사라진 골목길-알함브라 궁전의 루삥지붕”에서는 갈등과 분노 끝에 밀려간다. “悔-폐광-싸락눈 소리만 들려온다”에서는 허탈감에 좌절하고 도피한다. 그러나 “起-가리봉 오거리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박시우는 귀환한다. 이제 그의 시적 이력을 쫓아갈 것이다.



Ⅱ. 리얼리즘의 이론적 함의



먼저 리얼리즘 문학의 흐름을 따라가 보려한다. 이는 박시우가 세상을 독해하며 시쓰기를 하는 문법이 리얼리즘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현실과 어떻게 조응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지만, 그가 80년대를 관통하며 나름대로 정립했던 세상 읽기는 문학과 시를 통한 현실 참여였다.

막심 고르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대별시키기 위한 용어로 ‘비판적 리얼리즘’이란 말을 사용했다. 즉 부르주아적 삶을 비판적으로 묘사하여, 부르주아 계급의 허위 의식을 폭로한 작가들의 작품을 칭하기 위함이었다. 반면 루카치에 의하면, 리얼리즘은 진정으로 그 이름값을 할 만한 문학작품을 일컫기 위한 용어이다. 즉 진정한 예술성을 획득하려면 리얼리즘에 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루카치의 견해는,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박시우 시인에게도 해당된다.

리얼리즘은 현실의 올바른 묘사를 통해 인간 세상의 모순을 규명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19세기 이래의 문예사조라고 이해할 수 있다. 리얼리즘에 있어서 현실의 올바른 묘사는 단순한 사실성, 즉 사진 같은 묘사가 아니다. 적극적 휴머니즘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들의 특징이며 이를 통해 현실 참여와 비판이 가능했다. 휴머니즘과 리얼리즘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이에 의한 창작의 사명은 총체적 인간, 즉 르네상스적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창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시대와 세태 본질의 정확한 이해에 따른 이상세계 추구라는 리얼리즘의 목표는, 자본주의의 해석을 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물신화와 착취적 구조에 대한 이해와 대응 방식을 놓고 아나키즘과 맑시즘은 대립하였고, 맑시즘 내에서도 맑스에 대한 해석을 두고 다양한 사조가 전개되었다.

식민지 시기 한반도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아나보르 논쟁(anarcho syndicalisme vs bolishevism)은 리얼리즘 문학의 주도권을 두고 벌린 아나키즘과 맑시즘의 대결이었다. 권구현, 김화산 등의 아나키즘 문학 진영과 한설야, 임화 등 볼세비키 문학 진영이 문학의 수단화를 두고 벌인 논쟁이기도 한 이 과정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이 논쟁은 1980년대 한반도의 리얼리즘 문학 진영을 이해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익과 해방에 복무해야 한다는 볼세비키 진영의 주장은, 1932년 10월 고리키의 자택에서 있었던 작가회의에서 스탈린에 의해 제창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귀결된다. 이에 반해 아나키즘 진영은 아나키즘에 의한 무산계급 예술론이 전개될 수 있음을 밝히면서도, 예술의 본질은 영원하다고 역설했다. 권구현 등이 주장하는 예술의 본질은, 인간의 감성 표현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즉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이라는 인간의 감성이 자주적으로 표현될 때 진정한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적 상황에서의 리얼리즘은, 식민지 시기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에 대한 고민이 반세기가 지난 1980년대에 와서도 계속되었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6년 현재도 유효하다. 창작과비평, 실천문학, 노동해방문학 등의 리얼리즘 문학 진영은 루카치에서 고리키로 넘어가는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과정 중 한부분에 자신들을 노출시켰다.

1920년대 아나보르 논쟁 이후로 한국아나키즘은 더 이상 정치한 문예이론의 정립을 꾀하지 못했다. 한반도의 현실이 강퍅하게 급변함으로써,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대쪽처럼 갈라진 진영 모순은 아나키즘적 리얼리즘의 전개에 암울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한 권구현, 김화산, 이향, 이진언, 이윤희, 김말봉, 유치진, 유치환 등을 통해 아나키즘적 리얼리즘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아나키스트로서 식민지 시대를 견뎌냈고 특히 이진언, 이윤희, 김말봉, 유치진, 유치환 등은 합법화된 공간에서 세계 최초의 아나키즘 정당인 독립노농당 활동을 전개하며 문학 활동을 펼쳤다.

사회주의 예술에 있어서 인민성, 계급성, 당성의 개념은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1980년대의 일부 리얼리즘 계열 문인들이 인민성, 계급성, 당성이라는 관점을 보이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민을 위한”에서 더 나아가 “인민에 의한” 문학을 추구하였기에, 이들에게는 인민에 의한 창작과 감상이 주된 관심사였다. 『노동해방문학』이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매체였고, 30여 년 전 박시우가 처음 시작을 발표했던 ‘실천문학’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김지하, 고은, 양성우, 조태일, 신경림, 김정환, 도종환 등 당대의 리얼리즘적 경향을 지닌 시인들은, 시대의 모순을 몸으로 이겨내며 문학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실 투쟁의 이력을 빼내고 시로써만 냉정히 평가한다면 이는 과장이고 지나친 우대였다. 문학 외적 시대상황이 반영된 결과였으며, 그 결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09년 말경 참여문학을 지향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리얼리스트100’이, 반년 간 문학전문지 『리얼리스트』를 창간했다. 이들은 앞서 거명한 리얼리즘 경향을 주도한 선배 시인들과 시의 표현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선배세대 시인들이 현실 참여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역사, 민족, 민주, 민중의 내용을 거칠게 토로하는 데 비해, 이들은 한결 여유 있게 서사의 구조를 전개하면서도 문학의 품격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시우를 비롯한 ‘리얼리스트100’ 회원들 또한 아스팔트 위에서 화염병과 최루가스를 마셨던 세대들이면서도 비교적 사색과 성찰이 깃든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윗세대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그에 따른 문학적 성찰의 결과였을 것이다. 박시우는 경험에 의한 생활사들을 들추어 그 안의 모순과 그에 따른 연민, 사색, 성찰들을 잔잔한 울림으로 들려준다.



Ⅲ. 爭, 오월의 그날, 광대뼈에 드리운 그늘



치열하게 살았으되, 80년 오월의 그믐밤을 떠올리면 우리는 얼마나 떳떳할까. 80년 오월은 이 시절 20대를 살아간 사람들이라면, 소위 말하는 5공화국의 독재 속에서 해방을 꿈꾸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시우 시인 역시 살점 빠져나간 광대뼈만이 그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인은 해방의 꿈을 품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 궤적을 쫒아가 본다.

 

구름의 만찬은 끝났구나 활엽수를 스치고 남녘으로 내려가는 단풍은 얼마나 장엄한지 나는 가끔 넋을 잃곤한다 그렇지만 안다 이 짧은 계절 동안 모든 육신은 분주한데 가끔 실성한 자들이 단풍잎에 혀가 잘리는 것을 어쩌다 공중 가득 날리는 작고 검은 풀씨들과 마주치면 황망히 시선을 거둔다 (…)


기억하느냐 지난 봄 여름 숨죽여 보내면서 차곡차곡 슬픔을 쌓아 둔 억새가 햇살 한 줌에 광채를 띠며 우는 모습을 들리느냐, 바람에 실려 오는 주군의 낮은 목소리 따라 화답하는 억새의 흐느낌을 흰머리 산발한 억새는 뉘 집 자손이기에 이리 슬피 우는가 목이 쉴 즈음 누군가 메마른 가슴팍에 불을 놓으면 주군의 화급한 호명에 억새꽃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약실 가득 노을을 장전한 긴 그림자가 마을을 조준하는 저물녘, 내 뒤에 흉기 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나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술집의 붉은 주렴을 들추며 사내가 불쑥 자신을 주군이라고 말할 때 두려움도 희망도 아니었다 막차를 놓친 사내는 오늘밤 억새꽃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내부를 더 황폐하게 만들 뿐

―「백수광부의 노래」 일부

 

“흰머리 산발한 억새”의 흐느낌은 주군이라고 불리는 사내의 강요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호명에 억새꽃들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지만 날아오르자마자 이내 까마귀들이 낚아 챌 터이다. 술집의 주렴을 들추는 사내는 주군이라고 했다. 그가 정체를 드러냈으나, 시인은 두려움도 희망도 아니라며 담담하게 말한다. 이는 80년대를 광장에서 살아낸 시인이 갖는 자부심이기도 하고 비애이기도 하다. 버텨냈으니 두렵지 않고,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으니 주군이라고 인정해 줄 수도 없다. 희망을 주지 못하는 주군은 왕조시대에도 교체의 대상이었다. 민국과 민권의 시대, 만민평등·상호부조·대동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주군이란 우리 모두를 일컫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모래폭풍이 불면 그 여자

모래처럼 울었다

눈물은 따가웠다

조금씩 쌓인 눈물이 언덕을 만들었다

언덕에 오르면 그 여자의 일생이 펼쳐졌다

광활한 신기루, 위대했던 순간은 짧았고

비굴했던 날들은 목숨처럼 길었다

그 여자 아이라인이 짙어갔다

허물어 지지 않으려고

그 여자

모래의 뿌리를 허리에 감았다

―「사막의 광대뼈」 일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사막, 오랜 싸움의 끄트머리에서 회한과 눈물만 남았다. “위대했던 순간은 짧았고 비굴했던 날들은 목숨처럼 길었다”는 시인은, 그때 그 여자를 사막 한복판에서 만나는데, 이 사막은 구로공단 가리봉 오거리, 신림동 지하 보세공장일 수도 있다. 허물어지지 않으려고 “모래의 뿌리를 허리에 감”은 그녀의 아이라인이 짙어가듯 거리의 아우성은 진하게 색칠된다. 4월과 5월, 음지인 듯 양지이고 양지인 듯 음지였던 날들이 모래를 뿌리삼아 오늘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인은 당당하게 적고 있다.


저 물길 아래에

어린 영혼들이 누워 있으니

헐떡이는 붉은 아가미로

뜨거운 숨결 불어 넣어 주시라

바람 불면 벚꽂들아

꿈 많은 입술로 재잘재잘 날리시라

이제 봄은 견디는 계절

그리고 돌아서서 흐느끼며

어금니를 깨무는 시간,

바다에서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고

등 뒤에는 산 하나가

허물어지고 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봄바다」 일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지나간 날들의 꺼칠한 흔적들까지다. 시인과 우리 모두는 벚꽃의 하얀 향기를 남녘 바다에 뿌려주었다. 40여 년 전 시인의 봄날과, 시인의 딸 그리고 딸 친구들의 봄날은 같은가, 다른가. 리얼리스트 박시우는 40년 전의 봄날과 오늘의 봄날이 모두 부조리하다고 낮은 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크게 들린다. 이것이 부조리에 목소리를 높인 70년대 선배 참여 시인과 80년대 리얼리스트의 어법 차이다. 시인은 관념의 과잉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고 도식적 피아 구분도 하지 않으려 노력 했다. 이는 어쩌면 박시우가 30년간의 휴지기를 살아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노인정 입구의 굽은 소나무는 며칠 전부터 주사를 맞고 있다

그가 견디어 온 저 허공의 무게,

뿌리로 돌아가기 위해 노인들은 한없이 몸을 낮춰

지팡이로 그림자를 쿡쿡 찍으며 바닥만 보고 다닌다

(…)

엄마 전화 목소리에서 빠져나온 심해어 한 마리

더듬거리며 302호 벨을 누른다

스무 살 무렵이었을까

자전거에 드뷔시 달빛만 싣고

자취방을 찾아오던 그 남자

하염없이 눈에 밟히던 그 남자

달집이 처음 뿌리 내리던 그 어둠

―「302호에는 달집이 없다」

 

이 시는 화자가 젊은 날에 꿈꾸었던 세상이 있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버린 오늘의 모습과 “굽은 소나무”가 되어버릴 미래의 세상에 대해 성찰한다. 삶은 꿈이고 현실이고 투쟁이고 내려놓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아릿하게 있다. 몇 개의 빵을 얻으려고 생을 저당 잡혔던 기억, 누군가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한 권의 철학서쯤 책가방에 폼나게 넣고 다니던 추억이 있다. “스무 살 무렵” 그녀 자취방 섬돌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에 달빛이 실려 있다. 그러나 그 달빛은 오래전 그녀의 몸에서 빠져 나갔다. 이제 그녀는 시장통에서 쇳소리 가득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그녀도 “노인정 입구의 굽은 소나무” 같이 허리가 굽을 것이다. “한없이 몸을 낮춰” 바닥만 보고 다니는 노인들의 그림자도 언젠가는 어둠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시인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 달관하는 태도를 보이며 일러주고 있다.

 

내설악 한계사지 석탑 앞에서

한 조각 적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딸은 초승달처럼 몸을 구부리고

종일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입술 마른 바람에게

푸른 초유를 적셔주는 초여름 나뭇잎

산 그림자는 탁발 나갔다 돌아와

빈 좌대에서 가부좌를 튼다

숲에서 날아오른 곤줄박이

부리 끝으로 가리봉을 쪼는 저물녁,

닫힌 산문이 열리더니

엄마 뱃속에서 나온 등고선 하나

가파른 능선으로 걸어간다

날이 저물어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가문 계곡 돌부리가 환하다

―「초경」 전문

 

이제 시인은 자신의 분신을 데리고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내린 절의 석탑 앞에 섰다. 아랫배가 아프다고 “초승달처럼 종일 몸을 구부리고” 있는 딸의 모습은, 어쩌면 보름달을 꿈꾸었던 자신의 지난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조각 적멸을 생각하고” 있는 시인에게 돌부리가 환하게 밝아오는 것은, 아직도 우리들의 70, 80년대 그리고 식민지 시기가 꿈꾸던 것들이 과거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Ⅳ. 退, 사라진 골목길, 알함브라 궁전의 루삥지붕



박시우의 머릿속에는 도시 변두리를 연상케하는 소독차와 그들이 결핍 안에서 꿈꾸었던 호루겔 피아노가 있다. 그리고 비상금이 되어준 어머니의 비녀가 있고 폐지 줍는 리어커가 있다. 60년대, 70년대의 변두리 소시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기억들이다. 결핍의 골목길에는 살충제 뿌리던 소독차와 새마을 모자의 쇳소리가 쟁쟁하다. 그리고 호루겔 피아노에 멍들어 억세게 살아가야만 하는 시인의 아버지도 있다. 이제 그때의 사연도 골목길도 모두 사라진 이야기들을 박시우의 시를 따라가 살펴본다.

 

연막소독차가 비탈을 올라오면

악머구리들이 일제히 달라붙었다

짐칸에서 분무량을 조절하던 새마을 모자가

반쯤 일어난 작대기를 휘둘렀다

연탄재가 새마을 모자를 향해 날아갔다

비명소기가 들리더니 욕설이 쏟아졌다

어느 구멍이 까질러놓은 종자들이여,

석유냄새 섞인 욕이 들큰하게 들렸다

연막 아래선 개들이 흘레을 붙고

노인들은 땟국 흐르는 고의춤을 내렸다

악머구리들을 피하느라

막다른 골목에 갇힌 소독차

새마을 모자가 다급하게 빠꾸를 외쳤을 때

연막 뚫고 달려온 육손이

연무통에 바람 든 무를 박아 넣었다

소독차가 푸르덩거리며 홰를 쳤다

차에서 뛰어내린 새마을 모자

2성과 3성을 오가는 소리를 지르며 뛰다가

연기에 취해 실려 갔다

날이 저물자

대기에 퍼진 살충제는

짧은 그림자부터 파고들었다

밥상에 오른 돼지비계찌개에서

소독약 냄새가 풍겨

젓가락으로 반찬그릇만 두드렸다

눈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지만

똑같은 소리를 내는 어둠이 싫어졌다

호루겔 피아노를 갖고 싶어,

놋숟가락이 밥상을 내리치자

루삥지붕이 검은 검반으로 변했다

앞집 만신 깃발을 온몸에 휘감은 바람

눅눅한 구음을 풀어냈다

―「호루겔 피아노 -2성과 3성을 위한 인벤션」 전문

 

6월 장마가 시작될 즈음과 7월 장마가 끝날 때쯤이면, 어김없이 소독차가 동네 어디든 휘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매연보다 짙은 소독 냄새를 쫓아다니며 소독차 뒤꽁무니에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도시 변두리 어디서나 흔히 있었던 유년의 기억들을 시인은 촘촘히 그려내고 있다. 그 사내아이들은 농촌에서 태어나 꿈을 찾아 도시로 찾아든 도시빈민의 후예들이다.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속 풍경들이다. 산업화·근대화는 누구에게는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결핍을 생산했다.

박시우 시인에게는 피아노에 대한 결핍이 선명하다. 호루겔 피아노는 루삥집 변두리 동네에는 없었다. 시인은 저녁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내리치며 칭얼댔을 것이다. 그래서 “루삥지붕이 검은 건반으로 변했”고, 어머니의 얼굴은 불붙은 연탄마냥 시뻘겋게 변했을 것이다. 막내아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호루겔 피아노를 사주려면, 부모들은 어느 골목길 지하 공장에서 밤낮 없이 일을 해야 했다. 도시 변두리 아이들에게는 피아노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으니 일하러 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동네 어귀를 하릴없이 배회해야만 했던 시절이다. 이때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왜 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외웠었다. 시인은 성인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고 허탈해 했을 것이다.

 

1

오징어 배에는 대낮에도 별들이 많이 떴다

(…)

별을 따기도 전에 취해 쓰러지자

뭍에서 날아온 입술 붉은 별똥별

 

2

살구꽃 피고 열매 달리면

우리 엄니 머리에 비녀 피어난다네

누구도 뽑기 어려웠던 비녀꽃

세월이 팔아먹었다네

인간막내 걱정에

치매가 저 멀리서 군침만 흘린다네

―「에튀드 타블로-어청도 1985」 일부

 

이 땅 어느 ‘머스마’나 ‘가시내’나 ‘엄니’의 막내 아닌 이들이 없다. 어청도 오징어잡이 배를 탄 막내아들은 어머니 속을 꽤나 태웠었다. 어머니는 이제 치매가 오고, 시인은 갓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 술에 취해 쓰러진 시인은 꿈결에 나타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밀려온다. 어머니가 소중하게 지녔을 비녀를 시인을 위해 기꺼이 내다 팔았을 어머니 생각 때문이다. 그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서도 정신이 돌아오면 아들 걱정을 하니 말이다.

 

폐지를 가득 태운 리어카 목 늘어진 반팔 티셔츠 안에 늙은 나이테가 가쁜 숨을 내쉰다 대서 지난 빨간 신호등에서 흑점이 폭발한다 고개를 숙이고 두 발에 힘을 주지만 리어카는 느릿느릿 굴러간다 불쾌지수가 올라간 날카로운 경적을 울린다 오늘 따라 왕복 팔차선 도로는 삼도천 깜박거리는 신호등 바닥에 떨어지는 에어컨 박스 리어카에 위태롭게 쌓인 폐그늘이 산산이 날린다 건너편 플라타너스가 피워 올리는 옴브라 마이 푸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는 한 뼘 신기루

―「옴브라 마이 푸-대서」 전문


시인의 어머니 같은 노인이 폐휴지를 가득 채운 리어카를 끌고 간다. “늙은 나이테가 가쁜 숨을” 내쉬는데 “건너편 플라타너스”에 일정한 간격으로 신기루가 펼쳐진다. 가장 덥다는 대서에 매미들이 악다구니를 쓰는 이유는 뭘까. 신호등 바뀔 무렵 리어카에서 에어컨 박스가 떨어졌다. 리어카를 끌고 노인이 건널목을 건너기에는 파란불이 너무 짧은 것이다. “늙은 나이테”와 낡은 “리어카”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시인이 통찰하는 세상의 자화상이다. 오아시스 같은 신기루, 헛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마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루는 참나무에 낮달을 매달았다

장미가 새겨진 팔뚝을 걷어 부치고

각목으로 온몸을 두들겨 팼다

버둥거리던 달이 축 늘어졌다

계곡에 솥단지를 걸고 불을 피웠다

굶주린 상수리들이 입맛을 다셨다

루루는 쇠수세미로 과거를 긁어내렸다

계곡물에 시커먼 그늘들이 떠내려갔다

마을에서는 동티가 난다며 아우성

이장은 참나무에 부엌칼을 꽂고

동티잡이에 나섰지만

개들은 하늘을 향해 울음소리를 띄웠다

 

긴 가뭄, 손에 닿는 것마다

비명을 지르고 바스라졌다

―「동물의 사육제-긴 가뭄」 일부

 

이 시는 여름 삼복더위를 이겨내려는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지만, 약하고 힘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보신탕을 먹기 위해 “장미가 새겨진 팔뚝을 걷어 부치고” 각목을 휘두르는 모습이다. 바둥거리다가 축 늘어진 짐승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계곡에는 솥단지의 물이 끓고 있고 “울음소리”는 “동티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긴 가뭄”이 저주를 하는 것이다. 이는 시인이 모순되는 세상을 고발하는 방식이다. 시인의 마을에서는 결국 동티가 났지만, 이런 일은 대개 장미 팔뚝 대신 새마을 모자 꾹꾹 눌러 쓴 통장이 나서서 삼복더위에 추렴을 하곤 했었던 일이다. 시인에게는 “하늘 향해 울음소리” 띄우는 약한 것들의 부르짖음이 들려온다. 이것이 리얼리스트가 바라보는 세상이고 과거이고 미래이다.



Ⅴ. 悔, 폐광, 싸락눈 소리만 들려온다.



80년대 말쯤이면 아이들을 키워내고 물관이 “말라버린 아버지”들이, 한세대를 마감하는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한평생 캐던 광산은 이제 문을 닫았고 폐광된 마을에는 싸락눈만 하얀 좁쌀처럼 내린다. 시인은 광산의 상속권을 가졌으되 그것은 애초에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아버지 대신 짊어져야 할 의무인 것이다. 시인의 의무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몇 편의 시들을 통해 이야기 해 본다.

 

호스를 힘껏 빨자 곤로에 석유가 채워졌다

소금물로 입안을 헹구는 아버지

먹고 사는 일은 잘 빠는 힘

팔남매 먹는 입이 커지자

높아가는 곤로 심지

말수 잃은 아버지는 빠는 힘을 길렀다

아버지 입은 뿌리였다

척박한 집에 혀를 꽂고

어둠 틈바구니에서 마른 꽃을 피웠다

삼년마다 초봄에 찾아오는 가뭄

졸업과 입학이 겹치면

우리는 서로를 빨고

물관이 말라버린 아버지는

마당에 나와 달을 빨았다

단물 없는 공갈달

셋째 누나 장례 치르고

더 이상 빨 힘이 없어진 아버지

안방에 누워 뿌리를 드러냈다

사방 휘어지고 말라비틀어져

이따금 거친 숨 몰아쉬며

종일 달달한 빙과류만 찾았다

하늘에는 월식,

검은 동공이 점점 커지더니

아버지가 빨다 남긴 달을 삼켰다

―「아버지가 삼킨 달」 전문

 

곤로에 석유를 넣으려면 호스를 연결하고 빨아야 했다. 한참 뒤에 손으로 누르는 호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곤로는 참으로 유용한 도구였다. 전자렌지도 가스렌지도 인덕션도 없었으니 그 역할은 오로지 곤로였음이다. 심지가 타서 짧아지면 이것만 교체하러 다니는 “곤로 고쳐요!”가 직업으로 있었다.

시인의 아버지는 호스를 빨다가 석유가 입에 들어가면 “소금물로 입안을 헹구”었다. 결국 빠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 아버지는 입학과 졸업이 겹치는 초봄마다 “물관이 말라” 마침내 뿌리까지 드러내고 안방에 누웠다. 아버지는 영화의 끝 자막에 나오는 평범한 마을 사람 갑·을·병·정이었던 것이다.

 

한 뼘 꺼진 구들장이 입을 벌렸다

연탄가스에 취해

마당에 쓰러진 아버지

볏짚 두른 꽃나무들 생기침에

편도선이 부어올라

목울대까지 차오른 울음

끝내 터지지 않고

쌀독 긁는 소리

싸락눈 소리만

―「싸락눈 소리만」 전문

 

곤로 호스 빨던 아버지는 연탄가스에 쓰러지셨다. 쌀독은 늘 바닥을 드러냈고 구들장은 꺼져 내렸다. “학교 문턱 제대로 넘지 못해/ 누가 물어보면 무조건 모른다고/ 머리부터 흔들던 모르시기” 셋째 누이가 떠난 뒤,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파렛트의 말라버린 물감처럼 더욱 야위어갔다. 이윽고 아버지의 생애는 폐광이 되었고, 더 이상 채탄할 수 없게 되었다. 쌀독은 채워지지 않았고 “싸락눈 소리만” 들린다.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아련한 연민과 안타까움이다.



Ⅵ. 起, 가리봉 오거리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



군산 해망동 부둣가와 수출공단 가리봉 오거리 고가도로 아래께에는, 물망초들이 떠 있었다. 홍등에 붉은 빛 말고, 아침햇살 따다주기로 했던 시인의 약속은 아직 유효하다. 시인은 그 약속을 위해 풍랑주의보를 마다하지 않고 미조항을 분주히 오르내린다. 희망으로의 귀환을 준비한다.

 

오늘 하루 걸었던 길이

끈 풀린 신발을 거꾸로 싣는다

셈이 느린 가겟집 늙은 아줌마는

거스름돈을 더 꺼내고

출항 준비하는 멸치잡이 배들은

곰삭은 트림을 토한다

긴 여정은 때로 마음이 탈수되어

헝클어진 머리털에 소금기만 남는다

저인망으로 바닥을 훑어도

여독 하나 건져 올리지 못하는 저녁

폐그물에 자꾸 발이 걸린다

왈칵, 비린내를 쏟아내는 달

어판장 쓰레기통 뒤지는

고양이 발톱이더라

―「미조항에서」 일부

 

생존은 시인에게 배를 타라고 권했다. 오늘 걸었던 길은 고단했고 신발 끈은 풀어졌다. “셈이 느린 가겟집 아줌마”는 거스름돈을 더 많이 내어 주었다. 막걸리 한 병 팔아 얼마나 남는다고 그 마저도 어려울까. 아직 여독은 풀어지지 않았는데 시인의 힘 풀린 발이 갈지자로 비틀거리다가 폐그물에 걸렸다. 영악하지 않는 늙은 여주인과 마음이 헝클어진 시인은 정확히 한통속이다. 세상은 비리고 버림받은 고양이는 이 밤 쓰레기통이라도 뒤져야 한다.

 

군산 해망동 부둣가

풍랑 때문에 피항한 우리는

아침 댓바람부터 술집에 모였다

술이 오른 뜨내기 사내는

머리통을 들이밀고 덤불을 헤치더니

거무칙칙한 꿰맨 상처를 보여주었다

사내가 큰 소리로 떠들 때마다

밖으로 기어 나오려는 노래기

오래도 살았네, 니미럴

나는 빈 소주병으로

20년 묵은 노래기를 내리쳤다

붉은 콜타르 몇점이 바다로 튀었다

피맛을 본 파도가 어선들을 물어 뜯었다

모두 입은 다물고

눈으로는 출항 걱정을 했다

풍랑주의보는 며칠 더 이어졌다

―「풍랑주의보」 일부

 

젊은 날의 초상에는 예기치 못한 객기가 있다. 예정한 날 제 시간에 출항할 수 있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성질나서 소주병으로 내려친 건 노래기나 바퀴벌레가 아니라 그날이 그날인 출항 전 권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만져도 아무렇지 않은 흉터가 되고, 마침내 그 흉터마저도 훈장이 되기도 한다. 풍랑주의보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렇게 우리들의 80년대는 흘러갔다.

 

노랫가락 장단에 맞춰

살점이 튀고 등이 휘어지는 저녁

그물에 말려든 노을이

바다에 붉은 내장을 쏟아낸다

 

미끄러운 갑판 구석

양은 밥그릇에 고여 있는 삼도천

누가 건너가다 되돌아왔는지

불어터진 밥알들이 떠 있다

한 판 한 판 자숙멸치들이 쌓여갈수록

어군탐지기에 선명하게 잡히는

부둣가 물망초

주간 커피 약간 맥주 양주

선팅 유리창에 뿌리 내린 백도라지

말라 시들어가는

붉은 전등 아래서

춘풍에 부푼 요란한 풍선껌들

―「물망초 따라 포세이돈 어드벤처」 일부

 

그물을 끌어 올리는 일은 살이 터지고 내장이 쏟아지는 중노동이었다. 이를 이겨내는 건 “불어터진 밥알”이었다. “붉은 전등” 낮은 촉수의 빛에도 말라 시드는 백도라지는, 가리봉동 오거리와 같은 버스 종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물망초’술집의 아가씨들었다. 가리봉동 오거리는 수출공단 오거리 ‘가오리’라고 했고, 가두투쟁 ‘가투’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가오리는 구로공단의 명동이었다. 군산 해망동 부둣가에서 재수 없이 낚인 자숙멸치가 팔딱거릴 때, 그 가오리에서는 화염병이 대낮에도 불꽃놀이 하듯 날아다녔다. 최루탄 냄새 자욱한 가오리 고가도로 아래 구멍가게에서는, 채워지지 않은 노랑 월급봉투가 터진 풍선이 되어 뒹굴었던 시절이다. 미싱 앞에서 졸지 않으려고 타이밍 먹던 가오리 낡은 청바지를 입은 공순이들은, 얼마 안가 해망동 선창가 ‘물망초’가 되었고, 눈보라 휘감기는 “평택역 술집”으로 밀려나기도 했다(「슬픈 항해-홍도」).

 

아내는 종일 재봉틀을 돌렸다

설악에서 끊어온 옷감을 펼쳐 놓고

굽은 자로 이리저리 재더니

눈썹 닮은 능선 하나를 금방 만들었다

능선에는 단풍이 물들었다

옷감을 쥔 손이 달달달 떨릴 때마다

마당에는 달빛노저가리가 쌓여갔다

놀라워라, 아내의 재봉틀은 단풍공장

온 동네 주문이 밀려드는 철야작업

―「설악에서 끊어온 옷감」 일부

 

하루 세끼를 해결한다는 것은 곧 하늘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시인의 아내가 설악산 한계령까지 가서 옷감을 끊어왔다. 밤늦도록 노루발로 옷감을 누비고 나면 산동네에는 “달빛 노적가리”에 단풍잎이 수북하게 쌓였다. 그녀는 비 오는 날 국수를 삶는다(「국수 삶는 저녁」). 면발 굵은 칼국수가 아니라 가늘디가는 잔치국수, 시인의 아내는 국수 가락처럼 야위었다. 시인에게 생존은 이렇듯 무겁고 버겁다. 결국은 박시우에게는 시도, 혁명도, 생존도 데칼코마니처럼 지는 노을을 아프게 바라보는 것이다.

 

Ⅶ. 맺음말-다시 시를 쓰는 리얼리스트에게


“오월의 그날, 광대뼈에 드리운 그늘”에서 시인은 지나간 시절과 가까운 지난날, 그리고 현재를 천천히 되새김질한다. 애써 담담함을 내비치지만 때로는 회한이 깃들기도 했다. 이미 떠난 날들이 다만 추억으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활화산이 되어 다시 타오를 것인가. 상류에서는 물길이 보였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러 물의 흔적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물길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땅 밑으로 잠시 숨은 것이다. 복류천(伏流川)이다. 즉 시인과 동시대의 가슴앓이를 한 이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다만 꿈이 꿈으로만 남을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사라진 골목길, 알함브라 궁전의 루삥지붕”은 그의 음악 편력을 엿볼 수 있는 시편들이다. 그는 주제가 붙은 서양 곡명을 이용해 시를 써보겠다고 20대부터 벼렸다고 한다. 그 주제를 차용한 변주는 의미 있는 시들을 생산해 냈다. 젊은 날의 도전은 이제 이뤄진 셈이다. 정제된 시어의 사용은 시인의 노력이다. 이 부근에서 시인의 시는 적절한 높낮이를 통해 의도했던 바를 관철시켰다.

“폐광, 싸락눈 소리만 들려온다”의 시들을 따라가다 어떤 권투 챔피언의 경기가 생각났다. 체력이 달려 기진맥진하는 모습이다. 그 권투 경기를 지켜보는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서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물론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아쉬운 건 그가 견뎌낼 체력이다. 박시우 시인이 30여 년 만에 시집을 냈으니 태작을 우려할만 하지 않은가. 그의 시집을 읽는 기쁨이 또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그에게 더 많은 땀방울을 요구할 것이다. 조금 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가리봉 오거리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를 통해 시인은 지난날 중에서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기억을 떠올렸다. 오징어잡이 배를 탔던 군산 해망동, 통영호를 타고 비릿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시인은 밥풀을 짓이기고 있었다. 점당 오징어 한 마리의 고스톱에서 승자는 없었을 터, 부산한 삶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다. 무조건 고를 외치다 오징어 밥이 되었을 것이다. 오징어 먹물은 물망초의 맥주 양주와 등가 교환되었으리라. 그러나 물망초들은 우리들의 가슴 아픈 누이들이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시단은 시어의 무분별한 남발, 서사 구조의 미약함이 만연하였고 이는 당연시되었다. 서사 구조를 경시하고 시적 언어에 대한 절차탁마가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지나친 관념과 건조한 시어의 단순 나열로 경도되게 마련이다. 압축과 긴장을 통해서만이 시어의 팽팽한 울림이 퍼져나갈 것이다.

다시 글쓰기를 시도한 박시우 시인에게,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한 그 사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과 긴장감이 풀어졌음도 지적한다. 80년대 그가 선을 보였던 문예지 『실천문학』은 리얼리즘 문학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리얼리스트의 꾸준한 노력을 기대한다.


[참 고 문 헌]


 <기본서>

박시우, 『국수 삶은 저녁』, 애지, 2015.

 

<단행본, 비평, 논문>

게오르그 비스츠레이, 『마르크스주의의 리얼리즘 모델』, 인간사, 1985.

김영천, 『단주 유림과 독립노농당』, 한국정치사상연구소, 2015(개정판).

김영천, 『단주 유림의 아나키즘과 해방정국 아나키즘 정치』, 한국정치사상연구소, 2015(개정판).

김영천, 『독립노농당의 해방정국 아나키즘 혁명론』, 한국정치사상연구소, 2017(개정판). 

김영천, 『한국아나키즘과 독립노농당의 교육정책』, 한국정치사상연구소, 2015(개정판).

마로스 슬로님 외,박성규 역, 『러시아 문학과 사상』, 대명사, 1983.

벨라 키랄리활비,김태경 역, 『루카치 미학 연구』, 이론과 실천, 1986(수정판).

이승하, 「산업화시대 시의 모색과 발전-1970년대의 한국 시문학사」, 『한국 현대시문학사』, 소명출판, 2005.

조동범, 『한국의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 이진언의 시 세계-이진언 시집 「행정(行程)의 우수(憂愁)를 중심으로」』, 『한국문예창작』, 2013년 통권 제27호, 한국문예창작학회, 2013.

조선무정부주의운동사편찬위원회, 『한국아나키즘운동사』, 형설출판사, 1994(2쇄).

진계법(陳繼法),총성의(叢成義) 역, 『사회주의 예술론』, 일월서각, 1985.

G.H.R.파킨슨,현준만 역, 『게오르그 루카치』, 이삭, 1984.

 

<신문 자료>

《연합뉴스》, 2009년 1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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