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05 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달은 한가위 별 성근 밤이었네

김영천
2023-09-27

  


< 달은 한가위 별 성근 밤이었네 > 




김 영 천(金永千)


종일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누이는 단풍 물든 계절을 수놓았네.

 

한가위 싯누런 달이 떠오른 뒤,

별들은 자그락거리며

초가지붕 위로 쏟아져 내렸네.

수틀 내려놓은 누이는

조롱박 사이에 숨은 별 하나를

빛바랜 치마폭에 주워 담았네.

 

빨강 댕기와 노랑 댕기로

잘 익은 가을을 묶어준다던

오라버니는 여지껏 오지 않았네.

 

처마 무너져 내린 헛간을

흙먼지 바람이 설핏 스쳐가고,

미처 단풍들지 못한 낙엽만

뜰팡 아래에서 뒹굴고 있네.

 

이파리 죄다 시든

사립문 앞 대추나무,

벌레 먹은 대추알 두 개가

별 성근 하늘을 이며 매달려 있네.

 

휘영청 달은 한가위,

우물에 빠진 오동나무 까치집을

밤새도록 들여다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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