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05 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십이월의 고추밭

김영천
2023-09-27

   


< 십이월의 고추밭 > 




김 영 천(金永千)


잎사귀 죄다 시들고

고드름 맺힌 고춧대에

고추 두 개가 매달려 있다.

 

빨갛게 익은 고추 하나와

익다 말고 얼어버린

푸르댕댕 풋고추 하나.

 

마을 뒷산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고춧대에

볕을 나눠주던 해.

산비둘기 쫓던 포수의

총질 한 방에 부서져 내렸다.

 

부서진 해의 파편마저

십이월의 어디쯤으로 처박힌

눈 오는 날,

서로 어깨 기대던

고추 두 개가

눈발 섞인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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