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05 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아직도, 큰 강의 전설

김영천
2023-08-27

 


< 아직도, 큰 강의 전설 > 




김 영 천(金永千)


아직 잠 덜 깬 해가

하품하며 기지개 켤 때쯤,

쿨럭쿨럭 안개를 토해내는 강.

비릿한 껍질 안쪽이

자맥질하며 드러났다.

 

물비늘 사이로

페트병과 비닐봉지들이 헤엄치며 번들거렸다.

달과 별의 부스러기들은

누군가 몰래 드리운

낚싯바늘에 죄다 꿰어졌다.

 

강은 오랫동안 아팠고

가슴께에 불방 찍힌 흉터자국이 꿈틀댔다.

허리를 묶어낸

수술 실밥이 터져 있었다.

 

상처 아물지 않은

갈비뼈 속살 깊이

소금 한 주먹까지 얹혀 있었다.

쓰라리다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큰 강,

몸통에서 솟구친 폐유덩이 까만 선지가

흐릿하게 풀어진 나루터를 적셨다.

 

나루터 한 켠

돛대 부러진 폐선에서,

똬리 튼 용이

승천(昇天)할 날을 기다린다고

다리 절룩이는 학들이

홰 치며 수근거렸다.

 

큰 강이 몹시 아프면

누런 용이나 푸른 용으로

몸을 뒤집는 거라며,

그 중 가장 나이 많은

단정학이 눈빛으로 알려 주었다.

 

어느 봄날부터

물고기들이 잡히지 않자

사람들은 나루터를 떠났다.

이불 보따리 잔뜩 이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용이 된 강은 

두 눈 껌뻑이며 바라보았다.

 

달무리와 

윤슬 일곱 타래를 풀어

승천하려 꿈틀거렸지만,

매일매일

미세먼지 주의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커다란 용이

날아올랐다는 전설은,

오늘 아침

나팔꽃이 기상나팔 불 때까지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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