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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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아나키스트의 편지 - 하늘 >
김 영 천(金永千)
눈보라가 세상을 휘감고
더 이상 말은 달리지 못합니다.
길게 꼬리 끈
흰 말의 새하얀 울음만
깊은 골짜기를 빠져나가는데,
스멀거리는 어둠이
말의 발목까지 차오릅니다.
말갈기 쓰다듬으며
동지의 가쁜 숨소리를 떠올립니다.
온통 얼음뿐인
긴 겨울 날,
피 묻은 외투 안주머니에
죽음을 넣어 두고
대신 모아 둔 온기가
가슴 깊이 남아 있겠지요.
그 온기 모아
불씨 지펴야 하지만
동지의 끊어져 가는 숨소리가
나의 목을 조입니다.
숨 절절히 모아 들이켜시오.
죽어도 기어이
살아남아야 합니다.
준비된 폭탄은
억울로 막혔던 심장에서
솟구치는 화산.
동지의 맑은 넋에 얹혀
왜의 수괴와 야차 무리를 불태웁니다.
쇳물 시뻘겋게 담긴
동지의 눈빛에
눈 덮인 하늘 땅이 녹아 내릴 것을
나는 끝내 믿습니다.
모두가 추위에 떨고 있는 식민지,
동지의 청청한 맥을 던져
펄펄 끓여내야 합니다.
이제
지친 말의 목덜미 부여 안고
눈보라 헤쳐 나갈 테니,
한 뼘 감옥
독방의
동지 또한 명줄을 움켜쥐시오.
무너진 땅
가시덤불 얼음 구덩이 속
동지와 나.
마침내 살아내어
해와 달
온 천지로
하얀 말의 생생한 울음을
해일에 실어 보냅니다.
용오름 솟구치는 날,
백마의 갈기 휘날리고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태풍에 묶어 정녕 휘황하게 뿌립니다.
* 1920년대 대표적인 국내 아나키스트 단체 진우연맹(眞友聯盟)의 주모자 방한상(方漢相)이 검거되는 과정에서,
상해의 유림(柳林, 高白性, 高自性)이 그에게 보낸 편지가 발각.
아나키스트 조직 결성에 힘쓸 것과, 원동무정부주의자총연맹이 창립되면 이에 참여하라는 내용.
진우연맹은 일제 요인 암살과 식민 통치기구 파괴를 위해 유림으로부터 폭탄을 구하려 시도.
*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환국한 유림을 중심으로, 방한상과 진우연맹의 아나키스트들이 독립노농당 창당에 핵심 역할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