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05 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한참 시간이 녹슨 다음에도

김영천
2024-11-10



< 한참 시간이 녹슨 다음에도 >


 


김 영 천(金永千)


지난 계절의

꼭지점에 걸어 두었던

털외투를 꺼내

가불한 시간을 더듬었다.

 

쓰다 남은 시간이

외투 주머니에

이끼처럼 자리잡았다.

시간의 껍질 위로

눈 속에 묻힌

길 하나가

희미하게 걸렸다.

 

묵은 달력에 싸 두었던

돋보기를 들이댔다.

노루와 토끼들이

깊은 밤을 파헤치며

길을 찾았다.

가끔씩 멧돼지의 콧김에

길 가장자리가 데워지기도 했다.

 

또 

시간이

한 움큼 밀려오면,

길은 풀섶에 묻혀

자꾸만 가려질 테다.

한없이 한없이 뭉개지겠다.

 

한참 뒤

무너진 길을 따라

노랑 민들레꽃이 필 게다.

그때는 

장끼 한 마리가

발목에 힘을 주고

뵈지 않는 길을 쪼갰다.


시간이 녹슨 다음에도

처음마냥 길을 열겠다.

은하수보다 더 멀리

길은 이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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