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한국자주인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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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을 삭힌 동치미 >
김 영 천(金永千)
담장 너머 상수리나무
부엉이 울음에
대숲도 서걱댔다.
눈이 한바탕
탱자나무 울타리를 흔들 때,
뒷마당 장독대의 동치미는
조금씩 익어 갔다.
어딘가를 가는 발자국과
어딘가에서 오는 발자국.
집 앞 큰길에서
잠시 서로 스칠 때도,
항아리 속
동치미 국물은
깊이깊이 곰삭았다.
대문이 열리고
섬돌에 가지런히 놓인
낯익은 신발과
낯선 신발.
장독대의
항아리 뚜껑은
영락없이
소리 내어 반짝이곤 했다.
장독대를 지키던 참새들이
저녁거리를 물고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해 질 무렵.
얼어붙은 청동빛 하늘까지
굴뚝 연기가 닿고,
찰진 밥상에는
겨울을 삭힌 동치미가
한 보시기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