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05 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나를 잊지 마세요

김영천
2025-09-05



< 나를 잊지 마세요 >


 


서송  김영천 (瑞松  金永千)

 

돋보기에 내려앉은 문자가

일제히 책 위로 올라왔다.

 

용 쓰고 자리잡았지만

오래된 책은

군데군데 부서지고

상처가 깊었다.

 

도서관 서고에서 밀려난 다음

플라스틱 필름으로

영구보존 미이라가 될 테다.


포르말린에 몸 담근 활자들이

수차례 봉기했지만

시간은 그들 편이 아니었다.

 

마침내 눈물 흩뿌리며

귀양 간 곳은

마이크로 필름 판독기.

 

세월 몇 개가

주섬 주섬 흐르고,

하얗게 육탈된 활자의

마지막 혼불이

디지털 아카이브에 모였다.

 

나를 잊지 마세요.

오래된 서가의

낡은 책입니다.

 

어딘가에서

밤새 뒤척이던 활자가

그림자로 남았다.

 

컴퓨터 자판에

곰팡내 나는

책 향기,

목울대 넘기며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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