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05 김영천의 아나키즘 시


해가 뜨지 않은 마을

김영천
2023-04-21
조회수 130



< 해가 뜨지 않은 마을 > 




김 영 천(金永千)


눈 덮인 아카시아 사이로

낮 달이 뜨고,

밑동 마저 뽑힌 썩은 밤나무.


골목길에 묶인 판잣집들이

산비탈에 비스듬히 누웠다.

 

시장과 버스 종점은 

저 아래 까마득한 곳에 매달렸고, 

몇 개의 산등성이 너머로 

국민학교가 숨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밖에 없는 샘터 모퉁이를 돌아 

양동이 들고 밤새 줄 서거나,

찔끔찔끔 나오는 공동 수도에서

오 원에 한 초롱으로

하루를 버텼다.

 

어딘가에서부터 밀려와

산비탈까지 오른

밤골 사람들,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의 이삿짐을 나르거나

남의 집을 지었다.

남의 옷을 깁고

남의 설거지를 해주며,

정부미 쌀 몇 줌과

고등어 자반을 들고 돌아왔다.

끝내 제 이삿짐 챙기지 못한 사람들.

 

해장술에 취한 낮 달이

갈지자로 흔들리면,

마을은 언제나

그렁그렁 밭은 기침 소리로 뒤척였다.

 

벌건 대낮부터

슬레이트 지붕과 

대충 지은 블록벽도 비틀거렸다.


한 달에 백 오십 원, 

육성회비 달라고 

등굣길

책 가방 든 아이들이

낮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징징거렸다.


밤골의 아침은

해가 뜨지 않았다.

한국자주인연맹

(08793)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956, 302호  |  1956, Nambusunhwan-ro, Gwanak-gu, Seoul, Republic of Korea

TEL : 02-838-5296  |  관리자메일 : kaone@kaone.co.kr

COPYRIGHT ⓒ  Danju Yurim Memorial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ENOUGHM]

한국자주인연맹  (08793)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956, 302호  |  1956, Nambusunhwan-ro, Gwanak-gu, Seoul, Republic of Korea

TEL : 02-838-5296  |  관리자메일 : kaone@kaone.co.kr

COPYRIGHT ⓒ  Danju Yurim Memorial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ENOUG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