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함과 진지함, 그리고 삶의 여정-김규진의 시세계 『사과나무에게 묻다 』(2015)






따듯함과 진지함, 그리고 삶의 여정-김규진의 시세계 『사과나무에게 묻다 』(2015)



 박정희(朴貞熙)



1. “애씀”, 삶의 여정

 

김규진의 시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견실하다. 진지하게 애쓰고 가족, 이웃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산다는 것이 고답적이라고 바라보기도 하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세태에서 그는 일관성 있는 성실함을 보여준다. 냉소적이고 무관심하며 폐쇄적인 연대의 상실 풍조에,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린 딸을 바라보며 삶의 의욕을 느끼고, 힘겹지만 하루의 힘줄이 되기도 한다(「뜨거운 풀」). 그는 또한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별다른 준비도 없었음을 고백한다(「찌」). 열심히 살아왔으되 결과가 특별할 것 없었고, 세상에 내밀만한 일 또한 없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온 대부분 이웃들의 평범한 모습이다.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를 바라보는 우리는 따뜻하다. 그의 시쓰기는 자신의 삶과 주변의 일상에 진한 애정과 성찰을 담아 전해주기 때문이다. 가벼운 것이 당연시 되고 이웃과의 소통이 부자연스러운 단절의 시기에, 일상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그려내는 시인의 일관성 있는 시쓰기는 위안을 준다. 인간의 감성과 의지를 담아 소통과 공감을 주는 것이 시인의 직분이라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선의지를 향한 시인의 성실한 노력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왜 사서 삼경 중에서 시경이 첫머리를 장식하는가. 이는 인간의 정서를 고양함으로써 인간다움에 대한 통찰을 주지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세상을 직접 바꾸지는 못해도, 그러한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어 반향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시인은 부모 세대의 노력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 아버지는 세상에 내밀 것 없었다고 고백하였다(「뜨거운 풀」). 시인도 마찬가지이므로 시인은 아버지에게 연대를 느끼고 아버지의 아픔에 동조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발끝이 어디를 향했을 것인지 궁금해 한다. 아울러 아버지와 함께, 아니면 아버지의 빈 공간을 메우려 애썼던 어머니의 아픔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안쓰럽게 팔 벌린 어머니의 수레를 떠올리는 것이다(「어머니의 생선」). 이런 시인의 정서적인 모습에 우리는 안도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라면, 김규진의 시에서는 이 가능성을 확인한다.

 

2. “애정”, 따뜻함과 진지함

 

그의 시 쓰기는 잔잔하며 따뜻하다. 칠팔월 불볕이 아니라 사월과 오월의 잔잔함과 따사로움이다. 견실한 이의 심성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진지함에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스불 위에 놓인

뜨거운 풀들

사이를 헤엄치는 뜨거운 생선

그 뜨거운 힘으로, 뜨거운 파닥거림으로

나는 헤엄친다.

다음 한 끼의 뜨거움을 위해

또 다음 한 끼의 자맥질을 위해

비늘을 긁히며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들판에서 달궈진 쌀 한줌

땅속에서 가열된 무 한 뿌리는

어린 딸의 웃음이 되고

힘겨운 하루의 힘줄이 된다.

 

도마 위에 놓인 생선 한 마리, 풀 한 포기를 두고

나는 경배한다.

언젠간 내가 그들의 도마 위에 놓이기를

죽어

그들의 몸속에서 뜨겁게 헤엄치기를

 

―「뜨거운 풀」 전문

 

시인은 쌀 한 줌과 무 한 뿌리가 들판과 땅 속에서 이뤄낸 노력의 산물임을 안다. 이러한 노력이 어린 딸의 웃음이 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시인은 세상을 헤엄치며 한 끼의 뜨거움을 위해 비늘 긁히며 자맥질한다. 뜨겁게 헤엄치는 것은 가족과 이웃에 대한 책무이고 스스로의 성실함이다. 먼 훗날 뜨겁게 헤엄치다가 도마 위에 놓이더라도 그는 떳떳할 것이다.

 

수많은 길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한 개의 길을 택해 달려왔다.

 

나보다 먼저 자리한 사람들과

본래 그 자리에 있던 들꽃들 사이

자리를 비집는다.

 

사실 나는 세상을 위한 어떤 미끼도 마련하지 못했다.

다만 나의 가슴을 조금씩 떼어 매다는 것밖에는

 

(…)

 

눈을 떠보면

엉클어진 길과 빌딩의 수초들 사이

내 몸이 한 개의 찌처럼 떠 있다.

미끼도 없이

무거운 납덩이를 매달고

―「찌」 일부

 

시인은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결국 자신에게 적당한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영광스럽거나 빛나는 길은 아니었다. 빌딩의 수초들 사이에서 그의 몸은 한 개의 찌처럼 떠 있는데, 스스로 자문해 볼 때 고기를 낚기 위해 미끼를 뚜렷하게 준비하진 못했음을 고백한다. 다만 자신의 가슴을 조금씩 떼어내며 노력해 왔다고 말한다. 미끼도 없이 드리운 찌에서 튼실한 물고기가 낚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그 결과에 대한 평은 유보하는 것이 좋으리라. 시인이 큼지막한 물고기를 낚는다면, 그는 주위의 모든 이들과 그 기쁨을 함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이 드리운 찌에 무지개가 아롱지기를 기대한다.

 

1

아침이다.

아침의 눈꺼풀을 열어젖히면

불거진 힘줄 위로 어머니의 손수레가 길을 나선다.

명태 꽁치 고등어

이 얼어붙은 몸들은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 꿈을 기억할까?

생각 궤짝들은 제멋대로 부딪히고

길이 덜컹거릴 때마다

어머니의 몸은 조금씩 작아져

길 속에 스며든다.

깊은 바퀴자국만 남기고

길이 되어버린 어머니

 

3

저녁이다.

저녁의 눈꺼풀이 닫히고

어머니의 길은 다시 덜컹거린다.

아무리 고기를 많이 팔아도 수레가 가벼워지지 않는구나.

우리는 얼어붙은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너그 아버지 안 왔냐?

먹물 같은 한숨이 그릇 속에 채워지고

우린 묵묵히 어머니를 비웠다.

어머니 좀 웃으세요

웃음 대신 아이들은 어머니 이마에 선 하나 그어 넣고

잠이 들었다.

 

(…)

 

길이 덜컹거릴 때마다

어머니의 멈은 더욱더 작아지고

바람문 두드리는 소리에 자다가 몇 번씩 깨어보면

어머니의 꿈 밖으로

은빛 생선들이 수레를 끌고 파닥이며 떠가고 있다.

큰 별 작은 별

안쓰러이 팔 벌린 겨울 별자리 지나

 

날아라! 생선이여

눈보다 가벼워진 식구들을 싣고

―「어머니의 생선」 일부

 

가족을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심히 사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끼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아버지가 그랬듯 시인도 미끼를 준비하진 못했으니(「찌」) 아버지와 아들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아낸 것이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의 모자란 구석을 메우기 위해서 수레를 끌었고, 어머니의 작은 몸은 길 위에서 한없이 더욱 작아만 갔다. 길 위에서 생선 팔다가 언 어머니가, 오징어 먹물 같은 한숨을 내쉬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다. 미끼 하나 준비하지 못한 아버지는 어느 들판에서 헤매고 있을까. 그러나 시인에게 팔 벌린 겨울 별자리들은 따뜻하다.

 

쥐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무슨 잘못이 있어 항상 그렇게 쫓기는가?

번득이는 살의의 눈초리 속에서

그저 걷고 있을 뿐인 발자국 속에서

왜 황급히 몸을 숨겨야 하는가?

 

단지 잿빛 가죽으로 던져졌을 뿐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조금 많았을 뿐

덫에 치는 악몽을 떨치며

그들의 남은 양식을 조금 나누었을 뿐

갈아엎어야 할 한 평의 땅도

배불리 마실 우물 하나도 허락되지 않았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래서 쥐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정당한 방법이기에

―「쥐들에게 무슨 잘못이」 일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존재 의미가 있다. 인간이 용납하기 어려운 쥐들마저도 스스로 생존을 위한 노력이 있고, 쥐들 입장에서는 정당하다. 단지 인간과의 생존 경쟁일 뿐이다. 여기에서 옮고 그름은 없다. 서로 살기위한 노력이 상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적대감은 상대적이다. 실험실의 흰쥐에게 인간이 살상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인간 입장에서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는 인위적 판단 때문이다. 쥐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인간의 양식에서 찾았다. 불가피하게 적대적인 관계이다.

여기에서 삶의 모순이 전개된다. 따라서 살기위해 죽이지만 불필요한 살상 대신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는 살아내야 할 존재 의미가 있음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어짐” “자비” “사랑”은 인간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에 해당한다. 시인의 어짐이다. 시인의 심성이 꺾이지 않았음이다.

 

3. “함께”, 어깨 기대는 시인과 우리들

 

시인은 산촌 마을 길섶 들꽃들을 보고도 “서로 시린 어깨를 비벼댄다”고 묘사하며 애정어린 눈길을 보낸다(「진안 鎭安에서」). 그 마을에 “불이 켜지고” 늦은 저녁을 먹는 “숟가락 소리 들리”는데, 쌀값 떨어지는 뉴스가 귀에 들어온다(「진안 鎭安에서」). 이 뉴스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한숨이 될 것이다. 쌀값이 떨어지면 가난한 산골마을은 얇은 홑이불 하나 장만하기도 어려울 것임을 걱정한다. 시인은 오늘 “오후 산기슭에 묻힌 늙고 구부러진 길”(「진안 鎭安에서」)을 떠올리며 옹이진 길들과 술 취한 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결국 스스로도 힘들게 버티고 있음을 독백한다. “이 길도 나처럼 힘겨울까?”(「진안 鎭安에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버거운 일상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나눔과 연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인의 고운 심성에 동조한다. 피被와 아我가 “슬픔도 기쁨도 하나인 듯/ 어둠 속에서는 결국 한 색깔이 되고// 아차, 손 놓친 별 하나/ 밤하늘에 사금파리처럼 날카로운 금을 긋고”(「진안 鎭安에서」) 경계선을 벗어났다. 하지만 구별된 다음 서로의 조화로움이 시도될 때 ‘함께’가 된다. 경계는 구분하되 그 금마저 녹일 수 있는 따뜻함을 시인과 우리는 믿는다.


한국자주인연맹

(08793)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956, 302호  |  1956, Nambusunhwan-ro, Gwanak-gu, Seoul, Republic of Korea

TEL : 02-838-5296  |  관리자메일 : kaone@kaone.co.kr

COPYRIGHT ⓒ  Danju Yurim Memorial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ENOUGHM]

한국자주인연맹  (08793)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956, 302호  |  1956, Nambusunhwan-ro, Gwanak-gu, Seoul, Republic of Korea

TEL : 02-838-5296  |  관리자메일 : kaone@kaone.co.kr

COPYRIGHT ⓒ  Danju Yurim Memorial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ENOUG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