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아카데미
김두한(金斗漢 1918~1972) 서울 출신 :
한국자주인연맹
(08793)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956, 302호 | 1956, Nambusunhwan-ro, Gwanak-gu,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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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金斗漢 1918~1972) 서울 출신 :
좌진(金佐鎭)의 아들이며 독립노농당 특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3대와 6대 국회의원을 하며 그가 보여 주었던 독재에 대한 항거는, 자유와 인권의 절대옹호를 위한 독립노농당 당원으로서의 서울대학교 한국교육사고,『한국정당사·사찰요람』, 1994, 122쪽; 서울특별시 경찰국사찰과,『사찰요람』, 1955, 100쪽.
의식적 실천 행동이었다. 자유당 정권이 영구집권을 목표로 기획한 사사오입개헌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사카린 밀수사건을 비롯하여 공화당 정권이 재벌과 합작한 부정부패를 지적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투척하며 사회정의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주먹세계의 인물이 사회의식에 눈뜨면서, 현실의 모순에 대항하여 온몸을 던지는 극적인 변화의 과정에 유림과 독립노농당, 아나키즘이 있었다. 그의 독립노농당 입당에는 그의 아버지 김좌진과 유림과의 관계, 김좌진의 아나키즘 수용과 공산주의자에 의한 암살 등도 계기가 되었다. 그의 활동은 독립노농당의 청년 조직인 노농청년연맹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서울대학교 한국교육사고,『한국정당사·사찰요람』, 1994, 122쪽; 서울특별시 경찰국사찰과,『사찰요람』, 1955, 1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