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와 체념, 그리고 쓸쓸함의 미학 - 오정국의 시세계 『멀리서 오는 것들 』(2005)







허무와 체념, 그리고 쓸쓸함의 미학 오정국의 시세계 『멀리서 오는 것들 』(2005)



 박정희(朴貞熙)


 

오정국의 시집 『멀리서 오는 것들』에는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은, 일상의 상투적일 수도 있는 감정의 결을 아련하게 조율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결코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또한 목소리의 높낮이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오히려 작자의 의도를 편안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수사를 통해 감정과잉을 표출하는 경우, 대개는 작자의 의도와 달리 서사의 힘이 떨어지곤 한다.

그러나 오정국 시인은 막연한 관념의 시적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즉 대상이나 서사의 시어 조탁이 구체적이어서 작자와 독자의 교감이 무리 없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설명조의 서술과 평이한 시어 사용이 자칫 단조로움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서사구조의 탄탄함에 덧붙여 적절한 상징과 압축을 통해 탄력 있는 시적 긴장감이 더해진다면, 그의 시를 읽는 재미가 배가되고 감동의 깊이 또한 더해질 것이다.

 

그 집안 내력을 캐낼 마음은 없었다 다만

그 얼굴들을 보고자 했으나

장미꽃만 보고 왔다

 

그 외딴집은 세상모르게 잠든 무덤 같았어, 아파트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 무수히 그 집을 지나쳤지만 사람의 얼굴을 본 적 없어, 슬레이트 지붕에 판자로 이어붙인 담장, …(중략)…

 

누가 무허가의 번지수를 살고 있는지, 나도 그렇게 세상 모르게, 그렇게 살고 싶을 때, 하릴없이 외딴집의 적막을 기웃거리지, …(중략)…

 

장미넝쿨은

굳이 저 쪽을 들여다보려는 내 마음과

빗장을 닫아 건 저들의 마음, 그사이에 걸려

수줍은 듯 머뭇거려

꽃이 붉었다

-「담장의 꽃은 붉다」 일부.

 

이쪽에서 저쪽을 본다는 것은 저쪽에 대한 관심이고 따스한 감정이다. 오정국의 시에는 이웃과 소외된 삶에 대한 관심이 묻어난다. 타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와 은연중의 격려는, “외딴집의 적막을 기웃거리”며, “굳이 저쪽을 들여다보는 내 마음”으로 나타난다. “그 얼굴들을 보고자 했으나 장미꽃만 보고 왔다”, 담담하게 표현했지만 오정국의 소박함이 그 미덕을 발휘하며 울림이 있는 시가 빚어졌다.

결국 “빗장을 닫아 건 저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사이에 걸려 수줍은 듯 머뭇거려 꽃이 붉었다”. 머뭇거리며 꽃은 붉었는데, 수줍은 듯 붉은 그 꽃은 시인 자신이다. 외딴집은 “잠든 무덤” 같았기에, 그 무덤의 주인은 타자에 대해 경계심을 품었을 수도 있고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작자는 이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

시인이 아파트 뒷산으로 오르는 길 어디 쯤, “슬레이트 지붕에 판자로 이어 붙인 담장” “무허가 번지수”에 누군가 살고 있다. 작자는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그 집에 들어가 본 적 없고 “사람의 얼굴을 본 적 없”다. 하지만 “그 외딴집”은 시인의 눈길을 못내 잡아두는, 그의 시가 펼쳐지는 샘이고 더운 여름날 느티나무 그늘이다. 그러니 시인은 그 샘과 느티나무에 대해 뭉긋한 관심과 연민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어쩌다가 여기 와서

몸을 눕힌 통나무 토막이여

 

…(중략)…

 

안내 표지판이나 화살표가 없었지만, 정말

여기서부터 등산로라는 듯, 통나무를 타넘는 순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달라진다 등산객들은

신발을 고쳐 신고, 산책 나온 이들도

고개를 들어 먼 산봉우리를 쳐다보는 것이니,

 

통나무여, 재갈 물린 듯

시멘트에 봉해진 채

찻길과 등산로를 구획짓고

이어주는, 소통과

경계의,

늙은 몸 하나여, 봉인된

露宿의 토막난 허리여

-「비로서 제 몸 눕혀」 일부.

 

시인이 보여주는 소외된 주변부를 향한 관심은 스스로에게 쓸쓸함과 허무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그 쓸쓸함과 허무는 너와 나를 소통시키려는 신성한 의식이다. 그 의식은 자기 방기가 아닌 타자와의 융숭한 나눔을 전제하는 것이다. 어딘가로 부터 와서 등산로 입구, 여기에 몸을 눕힌 통나무를 통해 그는 폐쇄된 단절이 아닌 의식의 정화에 다다른다. 그로써 통나무를 경계로 등산하는 이들이 마음을 가다듬는다. 통나무는 시인의 눈과 입과 숨결에 의해, 제 몸 눕혀 신성한 제단이 된 것이다. 허무와 쓸쓸함, 그로 인해 다가오는 체념은 삶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그 애정의 끄트머리 정수리에는 시인이 쌓은 제단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느새 자리하고 있다. 시가 시인의 세계관이고 내면의 고백이 승화된 가치관임을 작자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쩌다가 여기 와서 몸을 눕힌 통나무”는 누군가에 의해 시멘트로 버무려져 고정되었다. 등산하는 이들은 안내 표지판도 없고 화살표도 없지만 이 통나무를 타넘으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통나무를 타넘는 순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달라”지며, “등산객들은 신발을 고쳐 신고, 산책 나온 이들도 고개를 들어 먼 산봉우리를 쳐다”본다. 문지방을 건널 때 문턱은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경계를 나타낸다. 굳이 문턱을 밟지 않고 건너는 것은 경계에 대한 신성함과 의식의 정화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등산하거나 산책하는 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의식의 원형질이 시인의 관찰을 통해 통나무를 넘는 순간 발견되고 있다.

“재갈 물린 듯 시멘트에 봉해진 채”, “찻길과 등산로를 구획짓고 이어주는, 소통과 경계의 늙은 몸”은 “노숙(露宿)의 토막난 허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토막난 허리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가 가려지거나 상실된 존재에 대해, 시인은 창작이라는 행위로써 의미를 북돋아 주고 찾아주는 신성한 제의(祭儀)를 취한다. 작자는 등산길 입구 통나무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때로는 허리 굽히고 때로는 무릎걸음으로 그 길을 빠져 나왔다 꿈이 나를 밀어 올리고 꿈이 나를 허물었던 것이니, 헛딛는 발걸음의 현기증으로 예까지 걸어온 것이니,

 

때로는 이렇게, 저무는 햇빛에도 무릎 꿇고 울어야 하는 것이니, 생이여, 엉겁결에 받아먹은 쌈밥처럼 지지리도 맛이 없지만 잠자코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겨야 하는

-「때로는 무릎 꿇고」 일부.

 

그는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된 통나무뿐만 아니라, 우리 삶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허리 굽히고 때로는 무릎걸음으로 그 길을 빠져나왔다”고 이야기 한다. 비록 “꿈이 나를 밀어 올리”기에 여기까지 왔지만, “발걸음의 현기증으로 예까지 걸어온 것”이니 때로는 “저무는 햇볕에도 무릎 꿇고 울어야”했다. 누구든 나이만큼의 생채기를 안고 있지만, 시인은 그것을 시로 육화시켜 공통의 체험으로 소통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자신의 생을 “엉겁결에 받아먹은 쌈밥”이라고 했고, “지지리도 맛이 없지만 잠자코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겨”왔다. 허무와 체념을 체로 거르면 쓸쓸함만이 남는다. 그는 시로서 체를 삼았고, 걸러낸 그 쓸쓸함은 삶의 흔적이라고 각인시킨다. 억지로라도 넘겨야하는 맛없는 쌈밥은 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저녁식탁에 올려져 있다. 오정국의 시집 『멀리서 오는 것들』은 일상의 고단함을 끌고 저녁 식탁에 앉은 이들에 대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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